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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김씨, 술병 치우고 책을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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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은혜의집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6,302회 작성일 2006-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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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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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하고 낡은 점퍼, 거칠어진 피부, 투박한 손마디 …. 김흥수(가명·53)씨는 ‘노숙자’다. 집도 절도 없이, 내일 없는 오늘을 살아왔다. 그렇지만 김씨의 손엔 술병 대신 ‘책’이 들려 있다. 다시 보니 김씨의 주름진 미간 사이 눈매가 깊다. 눈동자도 맑다. 김씨는 공부하는 노숙자다.



김씨의 변화는 순찰나온 경찰관의 엄한 훈계나 종교단체에서 나온 자원봉사자들의 설교 때문이 아니다. 뜻밖에도 인문학이다.



지난해 9월, 김씨는 노숙자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인문학을 공부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노숙자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그 말”에 김씨는 이상하게 끌렸다. 김씨는 면접을 거쳐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성당 세미나실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는 성프란시스대학에 입학했다.



“어차피 할일도 없으니 …” 하는 생각에 잡아본 책은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관심이 바뀌니 생각도 따라 변했다. “다른 사람들은 저리도 바쁘게 사는데 … 나는?” 자각은 의욕을 낳았다. “시청역을 오가는 사람들처럼 다시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김씨는 1년6개월이나 의지했던 거리의 무료급식을 끊었다. 지원센터가 소개해 준 자활근로를 시작했다.



김씨는 3일에도 전날처럼 남대문 근처 하루 7천원짜리 쪽방에서 직접 밥을 지어먹었다. 방안에는 소주병 대신 책이 쌓여 있었다. 노숙자가 무슨 공부냐며 술자리로 끌어들이던 쪽방 이웃들도 이제는 김씨가 책을 읽고 있으면 슬그머니 방문을 닫는다.



‘노숙자에게 인문학을 가르치자’는 아이디어는 미국의 사회비평가 얼 쇼리스가 창설한 ‘클레멘트 코스’가 원조다. 현실과 동떨어진 한가한 학문처럼 보이는 인문학이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를 준다는 발상이었다. 한국에는 임영인 노숙자다시서기센터 소장이 들여왔고, 대한성공회 성프란시스대학에서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초, 임 소장이 “노숙자에게 인문학을 가르치자”고 했을 때만 해도 주위에선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임 소장은 “무료급식이 아니라 인문학 공부야말로 자기 정체성을 찾고 사회의 흐름을 읽어내 공동체 안으로 스며들어 살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득해 지난해 9월20일 강좌를 열었다.



강의는 일부러 쉽게 풀어 진행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사흘 동안 역사·문학·작문 수업을 두 시간씩 진행하는데, 지난해 가을 면접을 거쳐 입학한 노숙자 20명 가운데 이탈자는 단 세 사람이었다.



17명의 수강생들은 이제 모두 거리생활을 접고 쪽방이나 고시원, 쉼터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뒤 석 달 동안 무료급식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차림새도 점점 말쑥해졌다. 이종수(가명)씨는 얼마 전 택시운전을 시작하면서 수강생들 가운데 처음으로 노숙자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섯 나라를 거쳐 온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가 이제 한국에서도 노숙자들을 생활인으로 바꿔내는 ‘작은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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